괴테의 여인들[편집 1]
이렇게 곱게 펼쳐진 인생에서 괴테는 무수한 여인들과
사귀면서 사랑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오죽하면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와 사귀었던 여인들도
같이 연구해야지 괴테를 알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괴테는 자신의 연인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대표주자가 파우스트의 그레트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샤를롯테 부프(1753~1828)이다.
그레트헨은 괴테가 십대 때 첫 눈에 반한 첫사랑의
대상이었고
샤를롯테는 괴테의 친구의 아내였다(...).
사귀던 여인들과의 나이 차도 엄청나서 19살때는
26살이나 연상인 주잔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란
여인과 사귀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무려 55살 연하에게 청혼까지 한다.
첫 결혼은 16살 연하인 크리스티아네 폰 불피우스
(1765~1816/당연히 나중에 성은 괴테)와 했으며
그녀에게서
아들인 아우구스트 폰 괴테(1789~1830)를 얻었다.
그런데 괴테는 그녀와 동거한 지 18년이나 지난 1806년에서야
결혼했고 결혼 9년만에 크리스티아네는 병으로 죽었다.
여담으로 크리스티아네는 평민이어서 주변에서는 괴테의
사실혼을 말렸다고 한다. 특히 친하게 지내던
샤를로테 슈타인 [5]과의 관계가 이 일로 인해 잠시 껄끄러워졌다고.
아내가 죽은 뒤에도 여러 여자들과 사귀었는데 1823년에는
무려 '55살이나 연하인 울리케 폰 레베초프(1804~1899)라는
여인에게 청혼했다.
울리케와는 2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긴 했지만
이런 청혼에 친구이던 칼 폰 아우구스트 공작은 미치도록 웃으면서
"일흔 넷에 19살 여인을 사랑하다니 이건 심하다구!"라면서 놀려댔다.
하지만 괴테는 진심이라 의사까지 찾아가
이 나이에 결혼해도 되겠냐고 진단까지 받았다.
의사는 매우 건강하니 걱정말라는 답변을 했다고.
그러자 그를 놀리던 아우구스트 공작도
괴테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깨닫고
괴테의 부탁을 승낙하여 레베초프 부인을 찾아가 괴테를
소개하고 그가 부인의 딸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울리케의 어머니인 레베초프 부인는
"괴테 씨야 너무나도 유명하고 그런 분이 우리 집안과
한 집안이 되는 건 나쁘진 않지만
아무래도..."라며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괴테의 아들인 아우구스트가 결사반대하는 통에
이 결혼은 이뤄지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보다 15살이나 어린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용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래도 괴테는 이 사랑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 (Hier war ich glücklich, liebend und geliebt)"
그녀들로 인해 괴테는 펜을 들 결심을 하였고 또
한 그의 사랑에 대한 고뇌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괴테의 얼굴을 떠올리기는 쉬워도
그가 거쳐간 여성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마치 한번 사랑의 불을 지피고 훌쩍 떠나버린 괴테처럼...
항간에서 하도 괴테의 여성편력이 심하다고 해서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10명은 훌쩍 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를 거쳐간 대표적 여인들은 열명이 넘지 않았다.
역시 나만의 과대망상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 당시에 연인의 숫자의 기준이 달라서 그런지...
달이 바뀔때마다 여자를 바꾸는 요새의 바람둥이와 비교해서는
참 정숙했던 괴테가 아닌가 싶다.
괴테 생애 최초의 여성인 어머니
Katharina Elisabeth Textor (*1731, gest. 1808)
괴테의 형제들은 모두 네명이 이었는데... 여동생
Cornelia Friederike Christiane Goethe 만이 살아남아
괴테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바이마르시기인 1777년 사망한 여동생으로 인해 괴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끝내고 고전주의적 자질을 갖추게 된다.
1765년 라이프찌히 학생시절 교제했던 Friederike Oeser
1766년 역시 라이프찌히 학생시절 사랑했던
Annette Käthchen Schönkopf(일명 케트헨Käthchen )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아나크레온풍의 시 Annette (1767)와
첫 희곡 <연인의 변덕>(1767)을 완성하였다.
1768년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친구로서
"아름다운 영혼"(빌헬름 마이스터에서 그려진 인물)의 모델인
Susanne von Klettenberg양을 만나 그녀의 영향으로 파라셀수스 등
신비주의자들의 서적을 탐독해 범신론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잘알려진 들장미 소녀(??)
제젠하임의 프리데리케 브리온 Friederike Brion
나는 그녀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로테의 모델인줄 알았다.
하지만 조사하면 다 나오듯이 그녀는 우리에게 잘알려진
특히 노래로 ... 들장미의 주인공이다.
괴테는 그녀와의 만남으로 아름다운 시 <만남과 이별>를 완성했으면
<괴츠>와 <파우스트>등에서 버림받는 순진한 처녀 모티브를 통해
그녀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사내아이가 장미 한 송이를 보았네/ 들판에 피어 있는 장미를/
그 꽃이 마치 이른 아침처럼 싱싱하고 아름다워/ 가까이서 보려고 달려간 아이는/
기쁨에 넘쳐 그 꽃을 들여다보았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아이는 말했네, ‘들에 핀 장미야, 너를 꺾어 가질 거야!’/
장미가 대답했네, ‘그럼 난 가시로 널 찌를 거야,
네가 영원히 나를 잊지 못하게 말야. 그냥 참고 있진 않을 걸’/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하지만 제멋대로인 사내아이는/
들장미를 꺾어버렸네/
장미는 꺾이지 않으려 기를 쓰며 아이를 찔렀지만 고통스런 비명도
소용없이 꺾이고야 말았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괴테의 들장미)
왜 위의 그림을 보고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는지... 그럼 괴테가 길버트인가?
하.하.하.
그녀는 괴테가 떠나가고 나서...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과연 괴테 이펙트라고 할 만하다.
괴테가 미남이긴 하나 이런 여성을 사랑했다니... 역시 눈이 높다.
하지만... 눈이 높은 만큼 상실의 아픔은 더욱 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델인 Charlotte Buff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상태...
그런 그녀를 사랑했으니 어찌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이 책으로 인해 유럽에서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했는가 하면, 그
와 유사한 사랑으로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의 자살이 줄을 이어 후
에는 작품 앞에 이에 대한 경고를 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괴테의 유일한 약혼녀였던 Schönemann, Anna Elisabeth(1758 - 1817)
일명 릴리 쉐네만
그녀와의 사랑과 약혼을 통해 시 <호수 위에서>를 썼으며,
오페레타<에르빈과 엘미레>를 구상했다. 하지만 파혼하고
괴테는 바이마르로 떠난다.
괴테에게 있어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Charlotte Albertine Ernestine von Stein (1742- 1827)
슈타인 부인 역시 기혼녀였지만 괴테는
그녀와의 정신적인 사랑으로 한층 성숙하게 된다.
궁정 여관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사랑은 이 시기를
점철하는 체험으로 그의 문학과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곱 아이의 어머니로서 7년이나 연상인 그녀는 괴테를 잘 이해하여
질풍노도적인 격정을 잠재워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보다 원숙한 문학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뒤 평민 출신
Christiane Vulpius크스티아네 불피우스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류층에 커다란 스캔들이었다.
또한 괴테는 인생에 있어서 합법적인 결혼생활을 딱 한번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불피우스와의 결혼생활이었다.
결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806년 프랑스 군인들이 괴테의 집에
침입했을 때 의연히 그의 앞을 막아서며 목숨을 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괴테보다 먼저 1816년 51세의 나이에 사망한 불피우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괴테의 싯구가 적혀 있다.
"그대, 오 태양이여, 어두운 구름을 통해 비치고자 하나 헛되었구려,
내 일생에 얻은 것은 오직 그녀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리"
환갑을 넘은 나이인 1815년에 괴테는 친구 빌머의 양녀이며
후에 아내가 된 마리안네 폰 빌머Marianne von Willmer에게 사랑을 느껴
<서동시집>(1819) 중 <줄리아카>에 그 사랑의 마음을 담게 된다
.
환갑을 넘은 나이에 연모의 정을 불태우다니...
놀라울 수밖에.... 역시 인생은 60부터다.
칠순을 훨씬 넘긴 1823년에 괴테는 다시 한번 사랑을 불태우게 되는데
마리엔바트에서 만난 19살의 울리케 폰 레베초프Ulrike von Levetzow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와의 사랑으로 괴테는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남겼다.
괴테의 연인 중 가장 인상에 강렬히 남은 여인이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할까?
아름답다기보다 매력적인 용모인거 같다.
베티나가 처음으로 찾아 왔을 때, 노년의 괴테가 옛사랑과의
재회로 착각하여 굴을 붉힐 만큼,
베티나의 어머니는 괴테가 어린시절 사랑했던 여인중에 하나였다.
이런 옛 사랑으로부터 괴테와 베티나는 서로에게 못 잊을
사람이 되어 숱한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러다가 1810년 5월의 어느 날, 베토벤과 베티나의 만남났는데
이미 눈도 어둡고 청각 장애도 생겨 외부 세계와는 단절한 채로
예술 창조 행위에만 심취해 있던 베토벤과 온 세상사를 잊어버릴 만큼
그에게 사로잡혀 ‘이 남자를 영원히 사랑했다’고 고백한 베티나.
어쨌던 이리하여 괴테와 베토벤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연적(戀敵)이 되었다.
그녀는 또한 독일낭만주의 대표적 작가
아힘 폰 아르님 Achim von Arnim의 부인이기도 했다.
이로써 괴테는 10명 안팎의 여인들과 불같은 사랑을 느끼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대해 나간다.